눌라바이오, 유전자교정 원천기술로 ‘종자의 퀄컴’에 도전
루테인 함량이 일반 비교군보다 11.4배 높은 토마토. 경상국립대학교 김재연 교수의 연구팀이 유전자교정 기술로 개발한 토마토에서 확인한 결과다. 눈 건강과 관련된 성분으로 알려진 루테인이 작물에 더 많이 축적되도록 유전정보를 정밀하게 바꾼 것이다. 연구팀은 가바(GAB…

루테인 함량이 일반 비교군보다 11.4배 높은 토마토. 경상국립대학교 김재연 교수의 연구팀이 유전자교정 기술로 개발한 토마토에서 확인한 결과다. 눈 건강과 관련된 성분으로 알려진 루테인이 작물에 더 많이 축적되도록 유전정보를 정밀하게 바꾼 것이다. 연구팀은 가바(GABA)와 라이코펜 등 기능성 성분을 조절하는 토마토도 개발하며 유전자교정 기술을 실제 작물에 적용하는 연구를 이어왔다.
이러한 성과를 사업화한다면 기능성 토마토를 새로운 품종으로 개발해 판매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김재연 대표의 구상은 달랐다. 토마토 한 품종을 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그 품종을 만드는 데 사용한 기술을 다양한 작물에 적용하는 데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토마토에서 구현한 유전적 변화를 콩이나 산업용 헴프에서도 구현하고, 글로벌 종자기업들이 원하는 형질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기술의 쓰임은 한 작물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2022년 4월 설립한 눌라바이오(NullaBio)는 이러한 구상을 사업으로 실현하기 위한 기업이다. 20여 년간 연구해 온 식물 유전자교정 기술을 바탕으로 기능성 작물을 개발하는 동시에, 다른 기업이 품종을 개발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공급하는 사업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와 통신 기술의 지식재산을 사업화하는 퀄컴처럼 농업에서도 핵심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미에서 ‘종자의 퀄컴’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연구 성과를 사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글로벌 종자기업의 유상 기술평가로 이어졌다. 다만 본격적인 제품 판매나 기술 라이선싱 계약에 앞서 넘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김 대표는 지금 그 가능성을 실제 작물과 기업의 개발 현장에서 검증하고 있다.
20여 년 식물 연구에서 발견한 가능성, 새로운 육종 기술의 사업화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농화학을 전공하고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파리11대학교에서 식물세포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워릭대학교와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으며, 2003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식물 유전자교정과 합성생물학을 연구해 왔다.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은 153편에 이른다.
그가 오랫동안 다뤄 온 주제는 식물의 유전정보를 이해하고 원하는 특성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영양성분을 조절하고, 재배 환경에 적응하는 형질을 개발하는 연구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새로운 형질을 구현하는 것과 이를 실제 농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품종으로 만드는 일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육종에서는 원하는 특성을 가진 개체를 선발하고 교배하는 과정을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한다. 작물에 따라 신품종 개발에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재배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가뭄이나 고온에 견디는 품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형질을 보다 정밀하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유전자교정 기술에 주목했다. 유전정보의 특정 위치를 바꿔 원하는 특성을 구현한다면 기존 육종이 가진 일부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기술을 실제 산업에 활용하려면 교정 결과를 안정적으로 재현하고, 여러 작물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야 했다.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배경에는 연구 성과를 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학술연구에서는 새로운 유전자교정 방법을 구현하고 성능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성과다. 반면 종자기업이 기술을 도입하려면 원하는 형질을 반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품종 개발에 적용할 수 있는지, 개발 기간과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함께 고려된다.
특히 토마토와 콩 등 쌍자엽 작물에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많았다. 유전정보를 정밀하게 교정하는 도구를 개발하더라도 실제 식물 세포에서 충분한 효율을 확보하기 어렵고, 교정된 세포를 완전한 식물체로 재생하는 과정도 작물에 따라 달랐다.
김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개별 연구에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작물에 활용할 수 있는 공통 기술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눌라바이오의 설립은 연구실에서 축적한 성과를 산업용 기술 플랫폼으로 확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정진희 박사는 공동창업자이자 연구팀장으로 핵심 기술의 개발과 상업화를 맡고 있다. 유전자교정과 형질전환, 작물 특성 분석을 담당하는 연구진을 중심으로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지식재산과 규제 대응 등 사업화에 필요한 역량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유전정보를 바꾸는 것에서 식물체를 얻기까지, 기술의 한계를 넘다
눌라바이오가 개발한 핵심 기술은 초고효율 프라임 에디팅(Ultra Prime Editing, UtPE)이다. 프라임 에디팅은 식물 DNA의 특정 위치를 정밀하게 바꿀 수 있는 유전자교정 기술로, 기존 유전자가위보다 다양한 형태의 염기서열 변화를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유전정보를 설계했다고 해서 실제 작물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술 개발의 어려움은 교정 효율에 있었다. 특히 쌍자엽 작물에서는 목표 유전자 위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거나 교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유전자교정 효소 변이체와 가이드 RNA, RNA 샤페론, 바이러스 유래 복제 시스템 등을 조합해 성능을 높였다.
2024년 《Nature Plants》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토마토와 애기장대를 대상으로 정밀 유전자교정 효율을 개선하고, 교정된 유전적 변화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어 2026년 1월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UtPE 연구에서는 토마토의 특정 유전자 위치에서 기존 비교 시스템보다 3.39~8.89배 높은 편집 효율을 제시했다. 여러 유전자 위치를 동시에 교정하는 성과도 확보했다.
하지만 유전정보를 정밀하게 바꾸는 기술만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전자교정 도구를 실제 식물 세포 안으로 전달하고, 교정된 세포로부터 식물체를 얻는 과정이 뒤따라야 했다. 작물마다 세포의 특성과 재생 조건이 달라 하나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SuperAgrobacterium’이다. 식물에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데 활용되는 아그로박테리움의 기능을 개선해 형질전환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관련 연구 결과는 2024년 《Horticulture Research》에 발표됐다. 눌라바이오는 이를 식물체에 직접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in planta 형질전환 기술과 결합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기존의 복잡한 조직배양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러한 연구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편집 효율이 높은 유전자교정 도구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원하는 유전적 변화를 설계하고, 이를 식물 세포에 전달해 실제 작물로 구현하는 과정까지 연결하는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토마토에서 확인한 성능을 다른 작물에도 적용하려면 여전히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작물마다 다른 특성을 고려해 교정과 전달 기술을 최적화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특정 실험에서 높은 성능을 확보한 기술이 다양한 작물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지가 플랫폼의 상업적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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