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티리얼즈, 강원도 무연탄에서 찾은 배터리 음극재 국산화의 해법
한때 강원도 경제를 떠받쳤던 석탄산업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에너지 소비구조가 바뀌고 탄광의 폐광이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지역의 주력 산업이었던 석탄산업도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2019년 강원도 탄광들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호 대표에게 이러…

한때 강원도 경제를 떠받쳤던 석탄산업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에너지 소비구조가 바뀌고 탄광의 폐광이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지역의 주력 산업이었던 석탄산업도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2019년 강원도 탄광들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호 대표에게 이러한 변화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강원도 삼척 출신인 그는 고향의 대표 산업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동시에 오랫동안 연료로 사용해 온 무연탄을 다른 산업에 활용할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배터리 소재였다.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등에 사용되는 이차전지에는 충전과 방전 과정에서 리튬이온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음극재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음극재인 인조흑연은 주로 석유계 원료를 고온에서 처리해 제조하는데, 국내 배터리 산업 역시 관련 원료와 소재의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국내 무연탄에서 고순도 탄소를 추출해 인조흑연을 만들 수 있다면 수입 원료를 대체할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는 셈이다.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탄소소재를 연구해 온 김 대표는 이러한 생각을 실험으로 옮겼다. 2019년 3월 국내 무연탄에서 탄소를 추출해 인조흑연 음극재로 제조할 수 있는지 기초실험을 진행했고,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한 뒤 그해 8월 블랙머티리얼즈를 창업했다. 고향인 삼척 출신의 옥윤형 부대표가 뜻을 함께했다.
그렇게 시작된 도전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연탄에 포함된 불순물을 제거하고 배터리 소재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탄소의 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수백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 결과 블랙머티리얼즈는 국내 무연탄을 원료로 한 인조흑연 ‘KG-1’을 개발해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차세대 나트륨이온전지용 음극재인 하드카본 ‘KHC-1’까지 선보였다. 한때 연료로 사용되던 무연탄을 첨단 배터리 소재로 바꾸겠다는 구상이 두 종류의 제품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고향의 폐광 소식에서 시작된 창업, 무연탄의 새로운 쓰임을 찾다
김 대표가 국내 무연탄의 활용 가능성에 주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연구 경험이 있었다.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국가출연연구기관과 국내 상장기업에서 탄소소재 및 배터리 음극재 관련 연구를 수행했다. 상장기업의 사업부장을 지냈으며, 흑연계 방열소재 기업을 창업한 경험도 갖고 있다.
탄소소재의 특성과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연탄을 배터리 음극재의 원료로 활용하는 일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존 인조흑연은 주로 석유계 침상코크스와 같은 원료를 사용한다. 반면 김 대표가 선택한 것은 강원도 탄광에서 채굴한 무연탄이었다. 석탄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는 대신, 그 안에 포함된 탄소를 추출해 고부가가치 소재로 만드는 방식이다.
창업의 배경에는 고향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삼척을 비롯한 강원 영동지역은 오랫동안 석탄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탄광이 문을 닫으면 관련 산업과 일자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무연탄의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지역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강원도 탄광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고향의 대표 산업이 사라지는 것이 걱정됐습니다. 무연탄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할 방법을 찾던 중 고순도 탄소를 추출해 배터리 음극재로 만드는 방안을 구상했습니다.”
뜻을 함께한 옥윤형 부대표 역시 삼척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옥 부대표는 국내 공기업과 상장기업에서 대표를 지내며 기업 경영 경험을 쌓았다. 소재 연구개발에 전문성을 가진 김 대표와 기업 운영 경험을 갖춘 옥 부대표가 각자의 역량을 바탕으로 창업에 나섰다. 이후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문창민 연구팀장 등이 합류하며 기술개발 조직을 갖췄다.
하지만 무연탄에서 배터리 소재에 적합한 고순도 탄소를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연탄에는 탄소뿐 아니라 다양한 불순물이 포함돼 있다. 배터리 음극재로 사용하려면 이 불순물의 종류와 특성을 파악하고, 각각에 맞는 물리·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부터 공정에 필요한 장비까지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나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다른 성분이 남아 있으면 추가 공정이 필요했다. 실험 결과에 따라 처리 순서를 바꾸거나 장비를 개조하는 일이 반복됐다.
99% 이상의 고순도 탄소를 확보하기까지 거친 시행착오는 250여 차례. 관련 공정 기술을 확립하는 데만 약 5년 반이 걸렸다. 추출한 탄소를 약 2,850도의 고온에서 처리해 음극재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100회 이상의 실험을 거쳤다. 이 과정에는 초기 투자기업인 조인셋의 기술 협력이 도움이 됐다.
“무연탄에 어떤 불순물이 포함돼 있는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각각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과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하고, 처리 순서를 정립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서 경영상의 부담도 커졌다. 실험에 실패할 때마다 공정을 변경하거나 장비를 추가해야 했고,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약 2년을 주기로 자금이 소진되는 상황이 반복됐으며, 연구개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결국 김 대표는 추진하던 연구개발 과제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개발하던 흑연 벌크재 사업을 중단하고,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배터리 음극재 개발에 집중했다. 국내 무연탄을 활용한 인조흑연 KG-1과 차세대 하드카본 KHC-1에 역량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연구개발 범위를 줄이는 결정이었지만, 회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됐다. 오랜 연구 끝에 확보한 무연탄 고순도화 기술을 바탕으로 두 제품의 개발과 사업화에 집중하면서 블랙머티리얼즈의 사업 방향도 한층 구체화됐다.
250차례 시행착오로 확보한 탄소 기술, 인조흑연에서 하드카본으로
블랙머티리얼즈가 개발한 KG-1은 국내 무연탄에서 추출한 탄소를 고온에서 처리해 만든 인조흑연 음극재다. 리튬이온전지의 음극재에 사용하는 제품으로, 2025년 상반기 제품 출시를 마치고 샘플 판매와 고객사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인조흑연 제조에는 주로 해외에서 조달하는 석유계 원료가 사용된다. 반면 블랙머티리얼즈는 강원도 삼척지역의 민영탄광에서 공급받은 무연탄을 원료로 활용한다. 원료 수급처를 국내로 다변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연탄에 포함된 탄소를 높은 비율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대표가 강조하는 기술적 강점은 제조수율과 원가 경쟁력이다. 일반적인 석유계 원료와 비교했을 때 무연탄을 활용한 자체 공정의 제조수율은 약 65~70%에 이른다. 기존 비교 공정의 수율을 10~20% 수준으로 제시한 것과 차이가 크다. 원재료 가격 역시 회사가 비교한 수입 원료의 약 10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배터리 성능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무연탄에 포함된 견고한 탄소 조직을 활용하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소재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고, 고속충전 조건에서도 유리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대기업 고객사의 KG-1 평가에서는 고속충전 특성이 확인됐다.
KG-1의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는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연구 범위를 넓혔다. 새롭게 개발한 KHC-1은 나트륨이온전지에 사용하는 하드카본 음극재다.
나트륨이온전지는 리튬 대신 나트륨이온을 이용해 충전과 방전을 수행하는 배터리다. 리튬이온전지와 작동 원리는 비슷하지만, 음극재에 요구되는 특성에는 차이가 있다. 리튬이온전지에서 널리 사용하는 흑연은 나트륨이온을 저장하는 데 제약이 있어, 탄소 구조에 빈 공간이 존재하는 하드카본이 주요 음극재 후보로 연구되고 있다.
블랙머티리얼즈는 KG-1을 개발하며 확보한 무연탄 고순도화 기술을 KHC-1에도 적용했다. 국내 원료를 활용해 차세대 배터리 소재를 제조함으로써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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