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알에이, 14년 호흡 연구를 환자용 훈련기 ‘BreathSol’로
2009년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에서 근무하던 김동욱 대표에게 한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자가 자신의 호흡 상태를 확인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장비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가 구상한 것은 고글에 영상을 띄워 환자가 …


2009년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에서 근무하던 김동욱 대표에게 한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자가 자신의 호흡 상태를 확인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장비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가 구상한 것은 고글에 영상을 띄워 환자가 자신의 호흡을 조절하도록 돕는 시스템. 하나의 연구과제에서 출발한 이 구상은 14년 뒤 직접 기업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폐암이나 간암처럼 가슴과 배에 있는 종양은 숨을 쉴 때마다 위치가 달라진다. 방사선치료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해야 하며, 호흡 연동 방사선치료는 환자의 호흡 상태에 맞춰 방사선 조사 시점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치료 중 일정한 호흡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평소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호흡을 일정하게 조절하기란 쉽지 않다. 숨을 얼마나 깊게 들이마셨는지, 가슴과 배가 어느 정도 움직였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김 대표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문제도 여기에 있다. 병원에서 호흡 방법을 안내받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집에서도 자신의 호흡 상태를 확인하며 치료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는 2023년 1월 에이알에이(ARA)를 설립하고 호흡훈련기 ‘BreathSol(숨돌이)’ 개발에 나섰다. 연세암병원 임상교수로 일하며 쌓아온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단계에서 환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이다.
호흡 안내 과제에서 시작된 연구, 14년 뒤 창업으로
김 대표의 전공은 입자물리학이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이후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에서 의학물리 분야로 활동 영역을 옮겼다. 입자와 방사선을 연구하던 물리학자가 방사선을 이용한 암 치료의 정확도와 안전성을 다루는 연구자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이다.
국립암센터에서 맡은 호흡 안내 장비 개발은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됐다.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종양을 정밀하게 치료하려면 환자가 자신의 호흡을 확인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는 고글에 시청각 정보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호흡을 안내하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2009년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에서 펠로우로 일할 때 ‘환자의 호흡을 훈련하고, 모니터링하면서, 호흡을 안내할 수 있는 장비를 준비해 보라’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환자가 자기 호흡 상태를 보면서 안내에 따라 숨을 쉴 수 있도록, 영상을 띄우는 고글로 시청각 가이드 시스템을 만드는 구상을 그때 시작했어요.”
이후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서 호흡 연동 방사선치료를 준비하면서 관심은 병원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장비로 옮겨갔다. 그 무렵 눈여겨본 것은 아이폰에 탑재된 움직임 감지 센서였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작은 센서로 신체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다면 환자가 휴대하는 호흡훈련 장비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를 국책 연구과제로 제안해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미국의학물리학회(AAPM)에서는 비슷한 아이디어를 연구한 일본 연구진이 성과를 발표하고 기업을 설립하는 과정도 지켜봤다.
그러나 당시 김 대표가 생각했던 연구성과의 활용 방식은 창업보다 기술이전에 가까웠다. 연구자가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하면 기업이 이를 이전받아 제품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직접 회사를 운영하기보다 연구성과를 의료현장에 전달하는 데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연세암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였다. 연구를 통해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과 환자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완성하는 일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김 대표는 연구 이후의 과정까지 직접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때는 직접 창업하기보다 기술이전으로 연구 성과를 현장에 전하는 데 관심이 더 컸습니다. 연세암병원에 온 뒤로 직접 제품을 만들어 환자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완성해 전달하는 과정까지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023년 에이알에이가 설립됐다. 창업 이후에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김진성 교수와 용인세브란스병원 변화경 방사선종양학과장이 임상 자문에 참여하고, 신동오 부설연구소장과 김대운 개발이사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조직을 구성했다. 의료현장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문제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과 측정하는 것 사이, 센서 개발의 시행착오
처음 호흡 측정에 활용한 것은 스마트폰에도 사용되는 가속도 센서와 자이로스코프였다. 신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의 정밀도를 높이면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가슴의 상태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개발 과정에서는 예상과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센서로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가슴이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안정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려웠다. 호흡훈련에서는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들이마시고 내쉴 때 가슴과 배가 움직이는 폭이 얼마나 일정한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다.
“센서 정밀도만 확보하면 호흡에 따른 움직임도 충분히 정확하게 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개발해 보니 호흡을 감지하는 것과 가슴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즉 변위를 안정적으로 재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였어요. 기존 센서로는 저희에게 필요한 호흡 진폭을 정확하고 일관되게 얻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센서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매달리지 않고 측정 방식 자체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자기장을 감지하는 센서였다. 자석과 센서 사이의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질 때 발생하는 자기장 변화를 이용해 호흡에 따른 흉부 움직임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적용한 소형 웨어러블 호흡훈련기가 ‘BreathSol M’이며, 별도로 개발한 ‘BreathSol L’에는 레이저 센서를 사용했다.
두 제품은 측정 방식이 다르지만 환자가 자신의 호흡 상태를 확인하고 반복해서 훈련하도록 한다는 목적은 같다. 의료진에게 적합한 호흡 방법을 안내받은 환자가 집에서 센서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호흡 패턴을 연습하는 구조다. 병원의 치료용 호흡 모니터링 장비를 대체하기보다 치료 전 준비를 돕는 제품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센서의 측정 방식을 바꾼 뒤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었다. 측정한 정보를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화면으로 보여주고, 의료진의 도움 없이도 안내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창업 초기에는 전문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개발이 한동안 지연됐다.
“좋은 아이디어와 전망만으로는 개발이 빨리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제한된 자원으로 개발을 이어갈지, 투자와 정부 연구개발 지원부터 확보할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습니다. 환자가 실제로 쓸 제품을 만들려면 전문 인력과 지속적인 개발 예산이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김 대표는 부족한 자원으로 개발을 이어가기보다 외부 투자를 통해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확보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후 TIPS 운영사 액트너랩으로부터 1억 원을 투자받고, 2년간 5억 원 규모의 TIPS 연구개발 과제에 선정되면서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기업부설연구소 설립과 벤처기업 인증을 마쳤으며, 2025년 TIPS 창업사업화 과제와 2026년 TIPA ValueUP 19기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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