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현장] 미국 시장의 판이 바뀌었다…KITA 혁신포럼이 짚은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
한국무역협회가 11월 2일 ‘제2회 KITA 혁신포럼’을 열고 미국 첨단산업의 변화와 한국 기업의 진출 전략을 논의했다. 퀀텀프라임벤처스 김범수 대표는 공개 정보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현지 바이어의 의사결정 구조와 신뢰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최소 3년의 시장 진입…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경쟁의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의 구조를 바꾸면서 기술 개발과 제품 출시 주기는 짧아지고, 글로벌 기업의 협력 방식과 공급사 선정 기준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우수한 제품과 가격 경쟁력, 충분한 시장조사를 갖추는 것이 해외 진출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현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규제에 대응하며,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구축하는 역량까지 요구된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공개된 정보의 양보다 그 정보를 실제 사업 기회로 연결할 수 있는 현지 네트워크와 실행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11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스타트업브랜치에서 ‘제2회 KITA 혁신포럼’을 개최했다. ‘미국 산업 혁신 트렌드’를 주제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미국 진출과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 임직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 산업의 변화와 시장 진입 전략을 비롯해 AI 법·규제, 기업의 AI 전환, 저궤도 위성통신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 네 명이 발표에 나섰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은 축사에서 AI가 산업 전반과 글로벌 경쟁 구도를 재편하면서 한미 산업 협력의 기회도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AI·소프트웨어 기술력과 한국의 제조 역량이 실질적인 비즈니스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양국 간 가교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 발표는 퀀텀프라임벤처스 김범수 대표의 ‘미국 혁신산업 동향과 한국 수출기업의 미국 진출 전략’이었다. 김 대표는 미국 산업의 변화 속도가 기업의 기존 사업 계획이나 영업 방식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그가 제시한 사례 중 하나는 AI 기업의 매출 성장 속도다. 앤트로픽은 연간 반복 매출(ARR)이 1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증가하는 데 7개월이 걸렸으며, 러버블(Lovable)은 0에서 1억 달러까지 8개월, 커서(Cursor)는 12개월이 걸렸다. 2025년 말 엔비디아와 그록(Groq)의 라이선스·인력 관련 거래, AWS와 앤트로픽의 장기 협력도 산업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사례로 소개됐다.
김 대표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 수출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이 기존 공급사를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이나 지난해 확인한 구매 기준이 올해도 유효할 것이라는 판단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거래 조건과 협력 관계가 짧은 주기로 바뀌는 만큼 시장 진출 전략 역시 지속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어 공개된 정보와 실제 사업을 움직이는 정보의 차이를 강조했다. 바이어 명단과 연락처, 전시회 참가 기업, 조달 기준, 관세율과 통관 규정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바이어가 현재 어떤 문제를 고민하는지, 기존 공급사를 교체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평가 기준이 최근 어떻게 달라졌는지,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는 검색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김 대표는 이를 ‘형식지’와 ‘암묵지’의 차이로 설명했다. 형식지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 정보라면, 암묵지는 현지 관계와 대화를 통해 축적되는 사업적 맥락이다. 발표 자료에는 “공개 정보는 결과이고, 암묵지는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문장이 제시됐다. 인터넷에 성공 사례가 공개될 무렵에는 이미 공급사 선정이 끝났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 바이어의 공급사 후보군에 진입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특정 품목의 공급사를 검토할 때 바이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기업들의 목록, 이른바 ‘바이어의 명단’에 포함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 경쟁사들은 협회와 콘퍼런스, 지역 네트워크에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쌓으며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만, 한국 기업이 한두 차례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는 같은 위치를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현지 기업으로부터 소개받는 일도 단순한 인맥의 문제가 아니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소개는 인맥의 문제가 아니라 진단 결과”라고 표현했다. 소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맥의 부족을 탓하기보다 현지 시장에서 신뢰할 만한 공급사로 인식될 만큼 관계와 실적을 축적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취지다.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내려면 최소 3년”…규제·조직·통신 인프라까지 달라지는 경쟁 조건
미국 진출을 일회성 출장이나 전시회 참가로 접근하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가격 정책과 사업 방향 변경, 채용과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은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보고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현지 바이어 역시 결정 권한이 없는 실무자와는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기업의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현지를 방문해 주요 관계자들과 신뢰를 쌓고, 방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사업 기회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의 업무 관행에 맞춘 소통 방식도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이메일과 캘린더를 통해 일정을 확정하고, 회의에서 합의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한 뒤 후속 이메일을 통해 다음 단계의 실행 계획을 공유하는 것이 기본이다. 반면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이메일 발송이나 전화·메신저에 의존하는 소통, 미팅 이후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연락을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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